몇 해 전 일이다. 한 중견 제조사 인수 자문을 마치고 클로징을 한 지 1년 반쯤 지난 어느 평일 오후, 매수인 측 CFO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회계감사를 받다가 매도인이 클로징 전에 종결처리한 줄 알았던 산재 사건 두 건이 그대로 계류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노무사가 발견해 놓고 SPA에는 한 줄도 적히지 않았다.

그날 저녁부터 거의 일주일을 SPA만 다시 읽었다. 결국 그 분쟁은 합의로 끝났지만, 그때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 정작 큰 협상은 거래 자리에서가 아니라, 클로징 후 한참 지나 매수인의 회계법인이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SPA에 적혀 있는 그 한 줄,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이하 R&W) 조항이 전부다.

이 글의 목차

왜 R&W가 인수가의 5~15%를 결정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인수가의 핵심은 결국 EBITDA에 곱하는 배수다. 그런데 그 EBITDA가 가공된 수치였거나, 보고된 영업이익에 우발채무 가능성이 숨겨져 있었다면, 매수인은 —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 인수가를 다시 정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통로가 R&W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다.

그렇기 때문에 R&W는 단순한 형식 조항이 아니다. 거래 종료 후에도 작동하는 가격 안전장치다. 그런데 — 회생 변호사로서 — 회생기업 인수자 측 자문이나, 회생 사건에서 출발한 분쟁 사건을 다루다 보면, R&W 협상의 자리에서 매수인 측이 의외로 자주 놓치는 지점들이 보인다. 그중 다섯 가지를 적어 두려 한다.

하나, Cap과 De Minimis는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R&W 위반 시 매도인의 손해배상 책임은 통상 인수가의 일정 비율(Cap, 한도)로 제한된다. 한국 시장에서는 10~30%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건당 ○○만 원 이상의 손해만 합산하고, 그것들의 합계가 ○○를 넘어야 청구할 수 있다"는 식의 작은 한도(De Minimis와 Basket)가 추가된다.

여기서 매수인이 놓치기 쉬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반 R&W와 핵심 R&W(조세·환경·소송)의 Cap을 똑같이 잡는 것이다. 조세나 환경은 사후에 발견되는 손해가 한 번에 수십억 단위로 튀는 영역이라, 별도의 더 높은 Cap — 흔히 인수가의 100% — 으로 둬야 한다. 둘째는 De Minimis 기준 회피를 매도인이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 원인에서 비롯된 여러 건의 작은 손해를 한 건으로 묶을 수 있도록 "관련성(Related Matters)" 조항을 넣어 두는 편이 좋다.

둘, 보장기간은 부과제척기간을 기준으로 잡는다

표준 양식의 R&W 보장기간은 클로징 후 12~24개월이다. 그러나 조세 영역의 R&W를 12개월로 잡는 건 사실상 매수인에게 보장이 없는 것과 같다. 국세 부과제척기간은 일반적으로 5년이며, 부정행위가 개입된 경우 10년이다(국세기본법 제26조의2). 매수인 입장에서 의미 있는 보장이 되려면 최소 5년, 안전하게 보면 7년 이상을 봐야 한다.

환경도 비슷하다.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 정화책임은 오염원인자에게 장기간 부과될 수 있고, 양수인에게도 일정 요건 하에 책임이 이전된다. 환경 R&W를 짧게 잡으면, 클로징 5년 뒤 토양조사에서 오염이 발견됐을 때 매도인에게 청구할 통로가 없다.

실무에서 — 보장기간 내에 위반 사실을 매도인에게 통지(notice)만 해 두면, 그 이후의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는 일반 상사 시효(5년)를 따른다는 조항을 함께 넣어 두는 것이 결정적이다. 분쟁 시점에 기간 도과를 다투지 않게 만드는 방패가 된다.

셋, Sandbagging — 알고도 묻어둔다는 표현의 함정

실사 과정에서 매수인이 이미 알고 있던 문제에 대해서도 매수인이 R&W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가. 영미 실무는 이를 "Sandbagging"이라 부른다. 알면서 모른 척 사인하고 나중에 청구한다는 어감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는 명문 규정이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에서 — 매수인이 진술·보장 위반 사실을 알았더라도, 당사자가 진술·보장의 효력을 별도로 부정하기로 한 약정이 없는 한, 매수인의 손해배상 청구가 제한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학계와 실무에서 이 판결은 "Pro-Sandbagging에 가까운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판례의 흐름과 별개로, 계약서에 명시적인 Pro-Sandbagging 조항(매수인이 알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을 넣어 두면 분쟁의 여지를 사실상 없앨 수 있다. 매도인 측은 그 반대로 Anti-Sandbagging 조항으로 방어한다. 어느 쪽을 대리하든, 이 한 줄이 사후 분쟁의 절반을 결정한다.

넷, MAC 조항이 "중대한 부정적 변화"라고만 적혀 있을 때

Material Adverse Change(MAC) 조항은 클로징 전에 대상회사에 중대한 부정적 변화가 발생하면 매수인이 클로징을 거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중대한"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면, 실제로 매수인이 클로징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 솔직히 말하면 —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델라웨어 판례를 봐도, MAC을 근거로 한 클로징 거부가 인정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정량 기준을 함께 넣는 편이다. 예를 들면 "직전 12개월 EBITDA의 20% 이상의 영구적 감소가 예상되는 사정" 같은 식이다. 그리고 매크로 경제 충격이나 산업 전체에 미치는 사정은 MAC에서 제외하되, 그 충격이 대상회사에 균형을 잃을 정도로(disproportionately) 미친 경우에는 다시 MAC에 포함시키는 — 이른바 carve-out의 carve-back — 구조를 잡는다. 한 줄짜리 MAC보다는 길어지지만, 클로징 직전의 협상력을 결정한다.

다섯, 손해의 산정 방식이 명시되어 있지 않을 때

R&W 위반에 따른 "손해"란 무엇인가. 직접 발생한 비용인가, EBITDA 감소액에 인수가 산정 시 적용한 배수를 곱한 가치 감소액인가, 시장가치 하락분인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분쟁 시 큰 차이가 발생한다.

매수인이 EBITDA 배수로 인수가를 산정했다면, 손해배상도 배수 효과를 반영하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매수인에게 결정적이다. 매도인 측은 반대로 "실제 발생한 직접 손해"로 한정하는 조항을 선호한다. 양측 변호사가 같은 페이지에서 만나기 어려운 협상 지점이고, 그래서 더 중요하다.

실무 메모

최근 거래 규모가 100억 원을 넘어가는 사안에서는 R&W 보험(W&I Insurance)을 점점 더 자주 본다. 전통적인 에스크로(Escrow) 대신, 또는 병용해서. 매도인은 클로징 후 클레임에 노출되지 않고, 매수인은 보장 한도를 보험회사로부터 확보한다. 다만 인수자가 의도적으로 묻어둔 위반은 보험에서 면책된다는 점이 — 매수인에게 — 함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 협상의 진짜 시점

의뢰인 대표님들과 SPA 협상을 시작할 때, 늘 한 번 짚어 드리는 말이 있다. "이 계약서는 거래가 잘 끝나면 다시 펼쳐 보지 않을 문서지만, 일이 어긋나면 우리 회사의 운명이 적혀 있는 문서가 됩니다." 그래서 R&W 조항을 마지막에 후다닥 끝내고 사인하지 말고, 가능하면 협상 초반에 한 번 호흡을 길게 가져가 보자고. 그때의 시간이, 1년 반 뒤 어느 평일 오후에 결정적인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 사건 이후로 모든 SPA 협상의 첫 미팅에서 R&W 조항부터 펼치는 습관이 생겼다. 가격 협상은 보통 마지막 며칠에 격렬해지지만, R&W 협상은 시간을 들일수록 매수인이든 매도인이든 분명한 자기 자리를 확보한다. 그 자리가 결국 클로징 후의 안전장치가 된다.

참고 법령·판례

  1. 대법원 2015. 10. 15. 선고 2012다64253 판결 (진술 및 보장 조항의 효력)
  2. 국세기본법 제26조의2 (국세 부과제척기간 — 일반 5년, 부정행위 10년, 역외거래 7년)
  3. 토양환경보전법 제10조의3 등 (오염원인자 책임)
  4. 상법 제64조 (상사시효)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과 변호사의 실무 단상을 담은 글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여러 거래의 요소를 가공·결합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변호사와의 상담을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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